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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파업과 베이징 영웅 이배영

'이배영'

베이징 올림픽이 끝나고 해가 바뀐 지금, 얼마나 많은 이가 이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까? 사실 많은 분들이 이 질문에 '당연하지'를 외치실꺼라 믿고있지만 아닐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이 사진을 본다면 반드시 '아!'하고 베이징 올림픽에서의 그의 경기모습을 떠올릴 수 있을꺼라 생각한다.

<승부를 떠난 진정한 스포츠맨십으로 세계를 감동시킨 이배영 역사>

내 머릿속에 그의 이름 석자는 최민호, 박태환, 이용대, 장미란 만큼이나 강렬히 새겨져 있다. 역사로 베이징 땅을 밟은 그는 아테네 올림픽 은메달리스트로 충분히 금에 도전 할 수 있는 선수였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부상으로 인해 안타깝게 무릎을 꿇어야 했다. 그는 순위권에 조차 들지 못하는 초라한 성적으로 경기를 마쳤다. 하지만 중국의 CCTV는 '영웅'의 칭호로 그를 불렀다. 다른 외신들도 마찬가지다. 성적을 넘어선 그의 투혼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도 분명 알았을 것이다. 자신이 금메달을 들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2위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진리처럼 받아들여지는 스포츠계지만 한계를 넘어선 열정에는 아무래도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이유로 그를 기억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감동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는 법. 이배영이라는 이름 석자가 내 기억에서 점점 희미해져갈 즈음 다시 금 그의 기억을 살리는 사진이 한장 눈에 들어왔다. 다름 아닌 파업중인 쌍용자동차 노조의 사진이다. 내가 본 두 사진은 참 닮고도 또 다르다. 그렇다면 어떤 점이 닮고 어떤 점이 다를까?
<생존권을 걸고 투쟁중인 쌍용자동차 파업장>

안타까움, 무모함 그리고 억울함
우선 쌍용자동차의 파업과 이배영선수의 경기 장면을 보면 안타까움이 든다. 한 순간을 위해 4년을 바쳐온 대한민국 젊은이의 노력이 무너지는 장면에 안타까움은 여지없이 찾아든다. 쌍용자동차 파업장면도 마찬가지다. 반 백년의 역사를 가진 자동차 제조사로 IMF도 거뜬히 넘은 우리의 토종 기업이 악덕 주인만나서 발가벗겨진채 길거리로 쫒겨난 꼴이 되었으니 어찌 안타깝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하루아침에 2646명이 우편으로 해고통지를 받았으니 그 참담함은 이루말 할 수 없으리라. 회사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건 다 차치하고라도 가장의 해고통지가 한 가족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기에 그 안타까움은 더욱 크리라.

또 다른 공통점은 무모함이다. 이배영의 도전은 무모했다. 아마도 선수 자신이 가장 잘 알고있었으리라. 본인의 컨디션으로도 힘든 무게를, 하중을 받아줘야 할 발목에 이상이 생긴상태로 들어올리지 못할 거란건 백번 천번 들어올려본 선수가 가장 잘 알고있으리라. 사실 부상의 시작은 발목이 었지만 밸런스가 무너진 상태에서 무리를 하게되면 다른 부위도 부상이 생길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부상들은 선수생명과도 직결될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도전 했다. 쌍용자동차도 마찬가지다. 회사의 자금은 씨가 말랐다. 렉스턴과 카이런을 앞세워 한때 SUV 최강자로 군림하던 쌍용차가 지금은 직원들 월급도 못줄 정도로 허덕이고 있다. 그런 와중에 생산라인의 파업은 그야말로 설상가상이다. 정부의 세제지원으로 특수를 누리게 된 요즘 쌍용차의 세일즈파트는 그야말로 울상이다. 사려는 사람이 있어도 팔수있는 차가 없기 때문이란다. 매장에 전시되어있던 차까지 팔아야 할 판이란다. 쌍용차 관련기업들의 줄도산 소식도 슬슬들려온다. 이런 중에도 생산라인의 파업은 끝날 줄 모른다. 게다가 정부는 공권력투입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상황이 너무 좋지 안다. 무모해 보일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 둘은 왜 부상과 파산의 위험을 무릅쓰고 무모한 도전을 하고 있는 것일까? 바로 이들의 마지막 공통점인, 억울함 때문이다. 이배영선수는 지난 4년의 땀방울에 억울하고, 국민들의 성원에 답하지 못하는게 상대선수의 선전이 아닌 자신의 부상때문이란 생각에 억울했으리라. 쌍용자동차 역시 인수 때는 R&D지원을 약속했지만 인수 후에 태도를 달리해 기술빼돌리기에만 급급했던 상하이차와 그를 방조한 현 경영진 때문에 불거진 부실을 열심히 일한 자신들이 떠안아야 한다는게 억울한 것이다. 그래서 부상의 위험에도 바벨을 잡을 수 밖에 없었고, 파산의 위험에도 파업을 강행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무모함의 뒤에 올 것은...
언뜻 보기엔 비슷해 보이는 둘의 도전은 아주 결정적으로 큰 차이를 갖고 있다. 바로 그들의 도전이 실패로 끝났을 경우의 결과가 그것이다. 우선 지켜보는 이들의 안타까움속에 억울함으로 시작된 무모한 이배영 선수의 도전은 성공했다면 금빛 부상투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실제 경기 직후 받았던 영웅 칭호 같은 외신의 감탄은 없었을 것이다. 쉽게말해 우리들만의 축제로 끝났을 것이라는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실패함으로서 경계를 넘어 더 큰 감동을 주었다. 아니, 감동을 넘어선 전율을 느끼게했다. 그렇다면 쌍용자동차는 어떨까? 쌍용자동차 파업 역시 성공으로 끝난다면 그들에게 행복한 결말이 될 것이다. 컨테이너에 쓰여있는 문구처럼 자랑스런 아버지로 가정에 돌아 갈 수 있을 것이다. 저말을 돌이켜보면 실업자 아버지는 자랑스럽지 않다는 말이라 슬프기도 하지만 명퇴하시는 분들의 가장 큰 고민이 자식들의 혼사라는 사실을 상기시켜보면 슬프지만 현실은 그러한가보다. 하지만 실패했을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 그 결과 역시 이배영선수의 실패 처럼 쌍용자동차라는 경계를 넘는다. 하지만 경계를 넘은 그 결과는 감동과 전율이 아닌 허무와 절망이다. 대우에 치이고 상하이에 뜯기면서 반백년을 이어온 토종자동차기업이 하나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파업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물론 그 기업과 명운을 같이 하던 사람 모두 삶의 터전을 잃게 될 것이다. 말그대로 허무와 절망이다. 노조라는 것도 결국 사업장안에서 존재하는 것. 만약 그 사업장이 사라진다면 그때부턴 쌍용자동차 노조의 이름 아래 모인 저 분들을 뭐라고 규정해야 할까?

담장 너머에서 보는 타인의 나이브한 생각일 수 도 있지만 그만큼 쌍용자동차의 파업은 위험하고 또 무모해 보인다. 정서적으로는 호응을 하지만 상황이 너무 좋지않아 안타까울 뿐이다. 노동자의 권익은 물론 지켜져야 하지만 지금처럼의 직장폐쇄사태는 피해야 하지 않을까?


by 방필수 | 2009/06/09 17:48 | 사회를향한강속구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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