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이여, 성찰을 시작하라!

간섭은 No! 지원은 Yes?
드라마에 나오는 재벌 2세들은 두 종류다. 충실히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거나, 아니면 충실히(?) 반항하거나. 보통, 기대에 부응하는 캐릭터는 조연, 반항 좀 해줘야 주연이다. 반항의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보통은 이목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아버지가 밉고, 그에 따라 자신을 구속하는 제약들이 못마땅해서다. 이들은 짜증과 갑갑함, 분노와 염증, 허무와 덧없음 등 세상의 온갖 고뇌는 혼자 짊어진듯 행동한다. 그때문에 이런 캐릭터들은 대게 집을 나와 혼자살고, 아버지와는 앙숙이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입은 독립과 자유를 외치지만 자신이 힘들땐 결국 아버지를 찾는다. 회사창립기념일 행사에 참석같은 건 구속이지만, 아버지가 결제해주는 VVIP카드는 타고난 나의 권리같은거다. 나를 내버려 두라고 외치면서, 그가 준 돈으로 외제차를 사고, 호화오피스텔을 얻고, 고급클럽에 다닌다. 이런 군상들을 보면 이건 뭐, 고뇌에 몸부림치거나 자유를 갈망하는 영혼 따위라고 보아주기엔 심한 괴리를 느낀다. 이율배반과 기회주의란 이런 것이다. 우리는 이런 인간들을 보면 극심한 짜증에 시달린다. 우리를 더욱 짜증나게 하는건 이런 인간들이 브라운관 밖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다만, 존재의 형태는 조금 다를지라도 말이다.

현재 미 정부가 자동차 산업에 이어 가전산업도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에너지 효율이 뛰어난 제품을 구입하면 현금으로 50~200달러를 현금으로 제공한다고 한다는 방침이다. 간단하게 말해 자동차 업계에이어, 가전업계도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장사를 하게되었다는 말이다. 물론 한시적이다. 시장주의자들에 의하면 이는 명백한 정부 간섭이며, 시장교란이다. 하지만, 평소에 정부규제를 악이라고 주장하던 시장주의자들이나, 기업들은 이런 정부의 간섭에 어떠한 반대의 반응도 없다. 법인세는 낮춰야 한다며, 지금은 빛더미에 올라앉은 아이슬란드를 찬양해왔던게 자유주의자들이었다. 하지만, 미국정부의 특정산업 및 특정품목에 대한 현금 지원을 반대하고 나서는 자유주의 경제학자는 거의 없다.

자유주의자와 재벌2세의 공통점은 이율배반
다만 미국기업이 아니라면 생각나는 사례가 하나있다. 바로, UPS가 캐나다의 우정국을 제소한 사건이다. FTA반대 논리로 언급되며 국내에도 잘 알려진 미국기업 UPS의 제소사건은 캐나다의 우정국이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는다는 이유로 발생했다. UPS는 캐나다 우정국에 지급되는 정부 보조금이 공정한 경쟁을 방해한다고 주장했다. 몰론, 미국내 자유주의자들은 UPS의 이런 소송을 반겼다. 하지만, 현재 자국(미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레닌도 울고 갈, 자국정부의 지상최대 시장교란 행위를 질타하거나, 반대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심지어 이 시장교란 행위는 극우정부였던 부시행정부시절 결정 된 사안이다.

UPS社 사건도 캐나다 우체국의 민영화를 요구한 것이 아니라 민간과 경쟁하는 캐나다 우체국 택배 사업의 불공정 경쟁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우체국 택배의 불공정 경쟁은 외국 사업자들 뿐만 아니라 캐나다의 민간 사업자들도 문제 삼을 수 있는 내용이다. [뉴라이트 | 한·미 FTA, 투자자·국가 소송 제도 과연 문제인가? | 하태경 / 2006-11-22 11:26]

자유주의자임을 자처하는 뉴라이트에서 발표한 UPS 관련 칼럼이다. 외국 사업자 뿐만 아니라, 캐나다의 민간 사업자들도 문제 삼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미국이 자동차산업을 지원해주고, 효율높은 가전제품을 지원해준다는 결정엔 그 어떤 반대의 목소리도, 분쟁도 없다. 우리도 미국과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바로 자동차 취득ㆍ등록세 감면 정책이다. 이건 분명 정부의 직접적인 시장개입이다. 뉴라이트같은 자유주의자들이 갑자기 케인지언으로 돌아서지 않는 이상 이에 반대하는 칼럼이나 성명을 냈어야 옳다. '왜 자동차산업에 정부가 나서서 혜택주냐고, 그럼 오토바이(실제로 대체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업계 입장에선 부당한거 아니냐'는 식의 지적은 내가 알기론 그 누구도 한 적이없다. 반대로 정부가 대기업을 더 지원해 줘야 한다는 목소리는 참 많이도 들었다. 심지어, 찔끔찔끔지원하다 잃어버린 10년을 맞은 일본처럼 되지말자며, 폭탄과같은 지원을 독려하기까지 했다. 유효기간이 지나도 한참지난 레퍼곡선을 들먹이며, 기업으로 부터 걷어가는 세금들 때문에 동기유발 안된다고 칭얼대고, 기업규제는 자라나는 기업들의 성장판을 막는 일이라며 투덜대는 그들이지만, 그 규제완화 때문에 발생한 문제에 대해선 정부가 도와줘야 한다고 외치는 건, 아무리봐도 드라마 속 철없는 재벌 2세의 반항논리와 유사하다.

자기성찰이 필요할 때

극단적 신자유주는 아이슬란드를 집어삼켰고, 미국을 흔들어 놓았다. 나아가 세계경제를 뒤흔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실패로 결론나 깊숙히 묻어뒀던 그 시절 논리를 다시 끄집어 내기에 바쁘다. 심지어, 레이거노믹스와 대처리즘, 사사오입과 공안정국의 재방송을 상영하며 우리더러 믿고 따라오라 말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줄이면서, 기업에게 사회적 자원을 몰아주는 반성없는 경제논리를 발전과 트리클다운이라는 허상만을 보고 따라오라 말한다.

자유주의를 기업인으로서 몸소 실천한 잭월치. 안되는 사업은 가차없이 매각하고, 여유 인력은 피도 눈물도 없이 내쫒았다. 오죽하면 별명이 '중성자탄 잭'이었겠나. 하지만 이 양반이 최근 자신의 신념과도 같은 주주자본주의에 대해 깊은 반성의 뜻을 표했다. 그는 파이낸셜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주주가치를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아이디어'라고 표현했다. 이는 경영학계에 매우 중대한 사건이다. 많은 회사들이나, 경제학자들이 절대가치로 받드는 주주자본주의의는 잭웰치가 정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그의 경영철학을 집대성하는 키워드였다. 하지만 그런 그가 주주자본주의를 비판하며, 그 카운터파트로 있던 주주는 물론, 직원과 하청업체들의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는 이해관계자본주의의 손을 들었다. 잭웰치를 미화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이번 인터뷰만 놓고보면 적어도 자기성찰은 하고 사신다. 그것도 크게. 미국의 보수나 기득권도 변화의 대상으로 인식되긴 마찬가지지만,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보수나 기득권을 향한 지탄의 목소리가 유독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로 자기성찰의 인색이다.

<요즘은 얘들도 정신차렸다구... | 한국일보>

요즘 드라마의 재벌2세들도 변하고 있다. 재벌2세지만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는 '아가씨를 부탁해'의 정일우나 '스타일'의 류시원 같은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철없던 오렌지들도 변해서 이젠 자기 책임은 다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들도 그럴진데, 기업과 시장주의자들은 언제까지 규제완화와 자유를 가장한 방종만을 요구하고 있을 것인가? 언제까지 배려없는 독식만이 효율이고, 우리를 잘살게 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거짓을 외치고 있을 것인가? 세계적 금융위기로 유발된 경기침체로 가장 큰 타격을 본건 바로 미국이다. 자본에 충성하는 시장매커니즘을 받들던 미국의 몰락으로 그들의 경제이념에 생각보다 큰 구멍이 존재함이 증명됐다. 그리고 그 시장은 그들이 배척하던 사회(정부)의 적극적이고 커다란 도움을 받았다. 난 개인적으로 시장을 부정하진 않는다. 합리적시장은 확실히 경제를 살찌울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다만 지금 이대로의 이기적인 시장주의는 틀렸다는 얘기다. 지금은 낡아빠진 고물에 페인트를 칠해서 남들에게 아직 쓸만하다고 설득하기 보단, 근본적인 교체와 수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기 위해선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가 아니라, 기계가 어떤상태인지를 면밀히 살펴야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 미국만 Change할 수 있는거 아니다. 우리도 변화할 수 있다.

이글루스 가든 - 시사진보가든...시사비평을 통해 ...



by 방필수 | 2009/08/26 14:12 | 사회를향한강속구 | 트랙백 | 덧글(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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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꿈돼지 at 2009/08/26 14:36
아버지돈 얻어쓰는 거지재벌2세야 .. 어디까지나 허락하에 받았쓰는거고.. 저 치들은 사기쳐서
뜯어내는거니 -_-
Commented by 방필수 at 2009/08/26 15:53
흠... 타인(국민)을 기망하여 사리를 취한다는 입장에선 사기라고 볼 수 도 있겠군요. 어쨋든, 건전한 자유주의, 시장주의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휴,,,
Commented by 원래그런놈 at 2009/08/26 14:46
우리의 시장 불패의 신화는 너무 단단해서 아직 성찰을 하기에는 혼이 덜 났다고 생각됩니다.
Commented by 방필수 at 2009/08/26 15:53
그러니까... 더 혼나기전에... 반성을...
Commented by 깊고푸른 at 2009/08/27 03:10
Imf때도 하지 못하던 반성인데..가능할지..

주주민주주의의 신봉자이신 교수님 수업을 들어서 그런지..
주주민주주의를 긍정적으로 봐라보고 있었는데..
역시 다양한 의견을 접할 필요가 있군요.
Commented by 방필수 at 2009/08/27 10:16
경제학하시는분들중 주주자본주의 지지하시는 분들 많죠. 신봉자라고 하시니 장모교수님이 아닐까하는 추측을 해봅니다.ㅎㅎ
Commented by 깊고푸른 at 2009/08/28 00:20
회사법교수님이시라서요.
그나마 회사의 민주성을 확보하는 길은 주주민주주의를 확립하는 거라고...
ㅎㅎ
Commented by 방필수 at 2009/08/28 12:52
사내이사와 족벌감사 지배구조가 주를 이루던 시절도 있었지요. 그 당시엔 주주자본주의가 분명 그 대안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젠 그 차원을 넘어설때가 되었나 하지 않았나싶어요. 그런의미에서 깊고푸른님의 교수님의 의견에도 찬성하는 바입니다. ㅎㅎ
Commented by 키세츠 at 2009/08/27 09:27
개인은 기본적으로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최대의 이기주의를 실천하는 존재라고 볼 때,
주주민주주의는 그 이기주의를 극단으로 실천하자는 회합일런지도....

그리고 국내 뉴라이트가 미국을 바라보는 시선은 지극히 선망적이며 자기 취합적이죠.
자기 생각과 다른 현상은 보질 않아요;;;
Commented by 방필수 at 2009/08/27 10:27
'자기돈으로 투자했으니, 주주들은 분명 회사를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할 것이다.' 주주자본주의는 키세츠님이 말하신것처럼 합리성을 갖춘 이기적 인간이 주주라는 점을 기본가정으로 하고있죠. 하지만 현실이 어디 그런가요. 이기성을 가졌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이기적행동이 최선이 되려면 정보의 완전 공개가 있어야겠지만 그렇지도 않구요. 그리고 이 주주자본주의가 회의적인 더 근본적인 컨셉은 기업을 위한 최선의 의사결정엔 자본을 투자한 주주이외에도 자신의 인생을 투자하고있는 직원이나 하청업체등의 이해관계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거라는 거죠. 사실, 이해관계자본주의는 주주자본주의를 배척하고있는게 아니라 포괄하고 있는거라고 보고있습니다.

뉴라이트에대해서는 크게 할 말이 없습니다. ㅎㅎㅎ;;;
Commented by coneco at 2009/08/27 14:38
좋은 글 잘봤습니다 (__)
Commented by 방필수 at 2009/08/27 19:28
재밌게 보셨다니 영광입니다. ^^
Commented at 2009/08/31 16:30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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