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계몽주의!

최근 변듣보라는 별명을 얻은 변희재 대표의 글은 한결같다. 한때 변절자라고 불리던 그가 한결같다니 생뚱맞은 소리로 들릴수도 있겠다. 물론 그가 학부생시절 권위에 맞서겠다며 목소리를 내던 때와 지금은 빙의로 인격이 변했다는 설명 외에는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다르지만 여기서 말하는 한결의 범위는 내가 그의 글을 처음 접하게 된, 그러니까 2005년 조선의 간택을 받은 후의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광우병 파동에서 촛불집회에 대한 쓴 소리로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그는 사회의 굵직한 대립각들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는 글을 써왔다. 그도 그럴것이 그는 자칭 보수의 논객을 자처하며 글을 쓰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한결같은가? 바로 그가 반대진영에 보내는 메세지의 높이다. 질적인 높이가 아닌 자세의 높이다. 그는 언제나 독자보다 몇 계단 위에서 내려다 보며 글을 쓴다. 비교적 최근 쓴 한예종사태 칼럼은 손발이 오그라붙을 정도로 고압적이다. 나이어린 학생들이 읽었으면 하는 글이라서 그랬을까? 노무현 대통령 서거 관련 칼럼도 별반 다르지 않은 자세를 취하고 있는 걸 보면 독자 만춤형 건방은 아닐지다. 그는 글로써 누군가를 가르치려 한다. 자신과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에게 항상 깨달음을 전달하고 독자를 무지의 어둠으로 부터 구원하려는 지극한 계몽주의자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

<누굴 또 가르치시려고...>


이제는 버려야 할 자세, 계몽주의 

노무현 대통령이 재직시절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계몽주의자가 되는것같다라는 걱정을 보인적이 있다. 기억에 의존하고 있어 자세히 언제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이 나에게 적잖은 충격을 준 말이었으므로 그가 이런말을 했음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그는 왜 이런말을 했을까? 18세기 인본의 존엄을 고민하게 하던 계몽사상이 우리 역사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일제치하에서다. 일제 강점이 점점 운명이자 삶의 한 형태로 받아 들여질 즈음 독립의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지식인들은 대중들에게 소설과 신문들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기려 노력했다. 당시의 애국적 성격이 강했던 계몽운동은  민족이 바로가야 할 길을 전하며 우리 독립의 사상적 공감대를 쌓아주었다. 유럽에서도 우리 역사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 계몽사상을 받드는 계몽주의자, 노무현 대통령은 왜 자신이 계몽주의자가 되어가는 걸 두려워 했을까? 그 이유는 바로 계몽주의는 쌍방향 ‘소통’이 아닌 단방향 ‘전달’을 통해 대중을 깨우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강조하고 너무 금과옥조로 받드는 경향이 있긴하지만 컴퓨터가 발달하고 인터넷이 보급되고 웹 2.0이라는 철학이 온라인에 자리잡으면서 우리는 소통과 공유 그리고 참여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들은 중요성을 넘어 보편타당의 영역에서 논의되는 주제들이 되었다. 세컨드라이프라는 게임이 컬쳐쇼크의 사례로 소개되던 때만해도 오프라인이 주된 생활영역이었고 온라인은 그 오프라인을 조금 더 윤택하게 하던 서브컬쳐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영역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이제는 듀얼컬쳐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온라인이 오프라인에 미치는 영향력은 강하고 수평적이다. 경계의 소멸이 진행되면서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난 곳은 아무래도 정치다. 과거, 정치는 어렵고 배운사람들의 영역이었고, 아무리 개인이 떠들어 봐야 현실정치에는 전혀 반영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술자리에서 정치얘기라도 할라치면 불만분자라던가 꼰대라는 비난의 눈초리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요즘은 어떤가? 너도 나도 정치얘기다. 어떤 의미로는 정치가 엉망이라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대중들의 목소리가 그들과 소통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런 소통이 가능해진 이유는 다름 아닌 앞서 언급했던 웹의 발전이다.


소통, 참여, 공유를 위해...

노무현 대통령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사회는 엘리트의 손가락질만 보고 맹목적인 '돌격 앞으로'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이젠 소통과 대화를 통한 범 사회적 컨센서스의 도출이 없이는 힘들다. 임기시절 실질적 복지예산을 줄인다고 손가락질 받으면서도 성장모델로 스웨덴을 꼽았던 건 아마 스웨덴이 계층간의 끊임 없는 대화와 소통으로 도출한 합의에 의해 성립된 국가라는 점을 계산에 넣지 않았을까 싶다. 그가 임기시절 이지원을 만들고 임기후에 민주주의2.0이라는 사이트를 만들고 온라인 토론을 시도했던 이유는 이런 자신의 믿음을 현실정치에 적용해보고자 하는 노력에서 였을 것이다. 망자의 것이기에 추측의 어미로 맺음할 수 밖에 없지만 난 어느정도의 확신을 가지고 있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스텐스는 진보라고 보기엔 너무 시장적이고, 보수라고 보기엔 너무 개혁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조금 다른 프레임을 걸어주고 싶다. 소통의 중요성과 시대의 변화를 깨닫고 현실정치에 흐름의 변화를 도입하고자 했으며, 앞으로의 정치적 기조가 그가 이루고자 했던 방향으로 흐를것 같다는 개인적 믿음에서 나는 그를 전위정치가라 불러주고 싶다. 안타깝게도 노무현 대통령은 다른 분야의 전위적 인사들이 그러했듯이 주변에서 고운시선을 받지는 못고 비통한 최후까지 맞이했다. 계몽주의자가 되기를 꺼려했던 그의 걱정은 이런 의미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가 추구하고자 했던 명령과 하달이 아닌 소통과 대화를 통한 전위정치에서 계몽주의는 원활한 소통을 저해한다. 계몽주의는 기본적으로 불균형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에는 곧 권위가 깃들기 마련이다.


현대사회에서 계몽주의가 안고있는 위험요소가 여기있다. 그렇기에 소통과 대화를 원하는 지식인이라면 계몽주의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너무도 많은 계몽주의자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사람들은 아집과 독선 그리고 계층편협한 시각에 기반한 계몽주의자들이다. 좌우 한쪽에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지만 최근의 토론프로와 정치사회적 행보들을 보자면 자.칭. 보수주의자들이 이 경우에 해당되는 사례가 많다. 앞서 말한 변듣보(어이쿠... 오타 죄송)가 그랬고, 김동길씨가 그러하다. 정치에 꿈을 둔 분 뿐만이랴. 과거 스크린쿼터를 이해하지 못하는 국민들을 교육시키겠다고 훈육관을 자처하던 최민식씨 역시 그러했다. 그리고 촛불이나 노무현 대통령 조문객들을 깨우쳐야 될 무지랭이로 보는 자칭 보수언론들이 그러하다. 이들에겐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이들은 사회적으로 꽤 영향력을 가진 위치에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의견은 더 이상 대중들에게 유의미 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들이 대중의 뜻을 유의미하게 생각하지 않는 만큼 말이다.



by 방필수 | 2009/06/06 23:01 | 사회를향한강속구 | 트랙백 | 핑백(1) | 덧글(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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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인터넷 여론 문화를 고치기 위해'이런 고소크리를 했다는 겸손으로 또 한번 그의 인간됨됨이를 느낄 수 있게 했다. 내가 일전에 변모를 향해 ☞ 계몽주의자적자세를 버리라고 했었던 적이 있다. 그의 이런 깊은 뜻을 알았다면 그런 말을 쉽게 할 순 없었을 것이다.이제 듣보잡은 저분을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되었으니 나 ... more

Commented by 엔드리스 at 2009/06/07 00:41
변희재... 대자보 편집장에 서프라이즈 대표까지 했던 사람이 많이도 변했군요.
권위주의에 맞서겠다는 사람이 권위주의자가 되어버린 꼴이네요.
Commented by 방필수 at 2009/06/07 01:18
우연찮게지만 아웃사이더에 기고한글도 보았습니다. 노선을 바꾼 계기는 노무현 대통령 때문이라던데... 제가 보기엔 그냥 정치를 향한 동앗줄 찾다 조선에서 내려오니 얼른 잡은 것 같은 느낌입니다. 뭐 어디까지나 느낌일 뿐... (나도 고소... 할테냐...)
Commented by 키시야스 at 2009/06/07 03:13
대중을 소통의 대상으로 본다는 단정하에서 계몽주의를 비판하셨는데,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 더 약한 지성 계층인 한국의 대중을 갖은 한국에서 계몽주의를 버리자는 시기 상조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대중만도 못한 꼴통이 나대는게 문제지요.
Commented by 방필수 at 2009/06/07 10:23
일방적인 전달로 계몽을 하기에는 지금의 시대가 너무 변했다고 보는 건 교육의 패러다임에 관한 또 다른 논제를 던지는 걸까요? 계몽주의를 버리기엔 시기상조라는 말씀엔 십분동의하지만 계몽주의가 지성계층을 두텁게 해줄 그것이라는데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입니다. 다만 인터넷에 접근성이 떨어지시고 여전히 원웨이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만을 보고계신 분들에 대해선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말입니다. 사실 그런 분들은 이미 포기한 상태에서 시간이 해결해주길 바라는 쪽이라...
Commented by 유치찬란 at 2009/06/07 03:38
계몽주의라.. 구닥다리일까요. 저는 기본적으로 계몽주의 반대파인지라..
한국은 계몽주의라고봐야할지, 프로파간다라고 봐야할지조차도 사실 애매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지로 한국에서 진정한 계몽이라 불리울 만한것이 이루어졌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생각도 하고요. (물론 전 유럽에서의 역사적 상황을 생각한다면 계몽주의 자체에 대해 반발합니다만, 키시야스님의 시기상조라는 말도 어느정도는 동의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소통. 참여. 공유 라는 것 이전에 냉전반공의 헤게모니와 미국적 스텐스가 수십년에 걸쳐 굳어지고, 이것이 학적으로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굳어짐으로 인해 언어와 패러다임이 제한되어 버렸지요.
이런 언어와 공간과 상상이 제한된 상황에서는 똑같은 사람끼리 모여 소통하고 참여하고 공유해봐야 거기서 거기밖에 안나오겠지요. 다른것 따위 인정하지도 못하는 것들만 모여있으니까요.

결국 우리는 이것에 대해 저항해야겠지만, 다음세대에 넘겨줄 수 밖에 없을겁니다. 그렇다면 다음세대에게 우리가 기대하고 가르쳐야 될 것은 현재의 패러다임과 상식에 구애되지 않고 새로운 것을 가능하게 하는 상상력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꼴통들 나대는 거야 한결같다는, 그런 놈팽이드이 전문가라는 꼬리를 달고 나오는 것도 싫음)
Commented by 방필수 at 2009/06/07 10:30
누군가가 임의로 정한 '선'이라는 개념들이 유산처럼 물려지고 금과옥조로 받아들여 지는데 대해서는 반대합니다. 헤게모니는 그렇게 형성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토론과 대화를 통한 컨센서로 인해 말이죠. 그런의미에서 계몽주의 비판이라고 보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음... 그러니까 유치친란님이 말씀해주신 미국적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이땅을 바꿀수있는 방법의 시작이 사회적 합의가 되야 한다는 말이고, 그럴려면 계몽주의를 지양해야한다고 생각해요. 누군가 정하고 다음에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으로는 지금과 같은 악순환이 계속될 것같다는 생각이에요. 하지만 키시야스님도 그렇고 유치찬란님의 말씀처럼 지금 시기(소통,참여,공유가 뭔지도 모르는 세대가 다수 존재하는)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겠지만 그럴수록 계속 시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감가는 말씀들에 덧글이 길어졌네요. 아무래도 본문에 충분한 내용을 담지 못한 본인의 미미한 필력때문이겠죠.
Commented by 키시야스 at 2009/06/08 04:20
변한 시대에 적응조차 못한 사람들끼리 지성을 이야기 해봐야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필요로 하는 지성은 21세기의 지성인데 고작 르네상스 시기의 지성을 갖은 한국에서 시대가 바뀌었다고 그 시대에 맞는 지성만 필요하다고 말하는건 이미 한국에 만연해 있는 결과 지상주의와 결과만 좋으면 모든게 좋다라는 사상과 맞물려 있기에 동의하기 힘든 것이지요. 한국은 그 어느곳보다도 계몽주의가 심각하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방필수 at 2009/06/08 12:55
얘기가 도는군요. 21세기 지성이란게 정확히 뭘 말씀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제 얘기는 대화와 타협을 통한 사회적 합의가 사회의 지침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21세기 지성이란 뭔가 어색한 단어를 차용해보자면 그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줄 수 있는 좌장정도가 그 21세기 지성이 되겠지요. 좌장은 말그대로 토론을 원할히 이끌어 주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사용되는 버려야 할 계몽주의란 좌장이 강사의 자세를 지양해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한거구요. 그리고 '원웨이 미디어만을 보고계신분들을 포기했다'란 말을 결과지상주의로 해석하셨는데 이 부분은 저도 좀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참여 공유를 외치던 네가 어째서 그들은 배척하려는 거야'라는 결과를 위한 자기모순을 지적하셨는데 여기에 결과 지상주의라는 표현은 썩어울리진 않지만 어쨋든 타당한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과지상주의라기보다는 벽에 부딪히며 느낀 귀차니즘이라고 이해해 주십시오. 수 번의 시도끝에 생명의 위협을 느낄정도로 답답해서 말입니다. ㅡㅡ; 그리고 키시야스님이 처음에 말하시 '변화시대에 적응못한 지성'이 바로 제가 좀 빠져주십시 했던 분들일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키시야스님은 저분들도 끌고가자라는 말씀이고, 저는 포기했다라는 차이네요. 결국 저런 분들이 지금 대한민국의 발전에 도움이 안된다는데는 동의를 하고있다는 말로 해석해도 무방하겠죠?

서두에 언급했던 대로 역시 논의가 도는데, 키시야스님과 제 주장이 이렇게 도는 이유는 서로 전제가 달라서 일겁니다. 그건 아마 주입식 교육과 토론식 교육의 효율성을 놓고 벌이는 토론 처럼 말입니다. 그러니까 전 바둑 5급끼리 토론을 하면 언젠가는 6급이 되고 7급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고, 키시야스님은 6급에게 하사를 받아야만 6급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인거죠. 제가 이해한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우리사회가 키시야스님의 생각대로 이어오다 벽에 부딪혔으니 이젠 조금은 생소한 전자의 방법을 시도해볼수있지 안나하는 생각입니다.
Commented by 키시야스 at 2009/06/08 17:12
네 전제가 다르다는 점 동의합니다. 결국 같은 곳을 보고 있는데 말이죠.

일단 제가 생각하는 21세기의 지성은 제 블로그 글들에 몇가지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제 시리즈 3번째 글에 나타나는 똘레랑스 정신등은 이미 개개인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데에서부터 시작을 하는 것이지요. 제가 느끼는 한국인은 너무 자만심이 강합니다. LHC 물리학 석사에게 물리학 비전공자가 물리 공부나 더하고 오라고 말할 정도인며 무엇이 부족한지조차 모르는 정말 기초중의 기초부터 다시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과거에는 지식이 부족하여 직접경험이나 간접경험을 통한 지식 처리가 중요시 되었다면, 현대에는 지식들의 중요도를 판단하고, 그 지식들을 처리하는 능력이 매우 중요한 사회입니다. 하지만 후자는 전자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절대 불가능한 것이며, 아직 전자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한국에서 후자를 바라는건 시기 상조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Commented by 방필수 at 2009/06/08 17:23
카시야스님의 말씀을 듣다보니 결국 베타적 선택의 문제는 아닌 듯 싶습니다. 말을 하다보니 계몽주의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범위를 두고 왈가왈부한 꼴이되었네요. 제 이해력이 부족함을 탓해봅니다. 결국 같은 말을 하고있었는데 말입니다. 방법론적으로도 베타성을 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사실 지금 사회적 차원에서의 계몽은 반드시 필요할 지도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노무현대통령의 서거를 순교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구요. 문제의식조차없는 사람들과 무슨 문제를 논하겠습니까. 하지만 거기에 나아가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남을 깔아보지는 말아야하는데 말이죠. 위에 언급되신 분들은 그 절제가 잘 안되시니...

덕분에 여러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키시야스 님의 블로그를 보니 가볍게 볼 수 없는 글들이 많은 것 같아 링크 신고합니다. 가르침 감사합니다. ^^
Commented by 키시야스 at 2009/06/08 17:25
링크 감사드립니다. 계몽주의는 실제로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지만 한국에서는 가르치는것이 지식 외에는 없어서 계몽주의의 이미지가 지식을 가르치는 것으로 굳어버린 것 같습니다. 여러 외국의 예를 보고 역사를 인식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 바입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있으니까요.
Commented by 방필수 at 2009/06/08 17:26
견문이야 넓을 수 록 좋은거니까요. 그런데... 링크를 누르면 페이지에 오류가 있다는군요. ^^;
Commented by 키시야스 at 2009/06/08 17:27
헐 그렇군요....제 글에 댓글로 알려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Commented by 방필수 at 2009/06/08 17:29
키시야스님의 블로그를 링크하겠다는 말이었습니다. ^^ 블로그에 달린 'Add link'버튼을 눌러 간편하게 링크하려 했으나 앞서와 같은 에러로 '마이'메뉴에서 메뉴얼로 추가했습니다. 최초 보이는 게시물이 말씀하신 그건가 보군요. 퇴근하고서 찬찬히 읽어보겠습니다. ^^
Commented by 방필수 at 2009/06/08 17:31
그런데 사실 전 한국사람들의 자만심을 지식폭력에 의한 트라우마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 아무튼 앞으로의 글 기대하겠습니다. ^^
Commented by 키시야스 at 2009/06/08 17:31
아 최초 게시물은 제가 논문이 이번주까지 완성에....이사가면 한동안 인터넷이 끊겨서...반 땜빵 플젝입니다...그 뒤에 3개가 주력하는 프로젝트고요.
Commented by 방필수 at 2009/06/08 17:48
위에가 무슨 목차 쯤 되고 아래부터 내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후딱본거 걸렸네요. ^^;;
Commented by 1W6H at 2009/08/23 22:04
몇 년전까지만 해도 저 역시 계몽주의(엘리트주의)에 대해 회의적이었지만, 지금은 다수결이 더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다수결은 자연스레 패거리주의로 빠져들고 그후엔 단기적 이득 외에 다른 기준을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Commented by 방필수 at 2009/08/23 23:27
1W6H님이 우려하신 다수결의 폐해와 패거리즘(?)에 대한 우려는 지극히 공감합니다. 다만, 집단지성은 지속적으로 교차검증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다수결과는 다르게 보아야 할꺼같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여 말씀하신 폐단의 해결책을 철인정치에서 찾는건 더욱 위험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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