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저녀를 통해 우리가 봐야할 것은?

초대형 떡밥이 떴다. 회손녀보다 강력하고 미네르바보다 섹시(?)하다. 아무튼 지금 개인블로그는 물론이고 각 분야의 폐인동산이 이 초대형 떡밥으로 인해 축제분위기다. '키작은남자 루저'와 '내가 170cm이니 남친은 180cm이상' 그리고 '남자가 여자보다 조건이 좋아야 한다'는 한 여인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성관이 전파를 타고 구르면서 지금은 초대형 떡밥으로 자라났다. 이미 '루저녀'라는 애칭으로 네이년에 자동완성이 될 정도다.

그녀에 관한 게시물들을 살펴보면 역시나 원색적인 비난이 주다. 아주 드물게 쉴드를 쳐주는 분들이 있지만 그녀에 대한 비난을 막아주기에 그 쉴드들은 너무나 초라하고 궁색하다. 그렇게 시작된 비난의 불씨는 번지고 번진다. 미수다라는 그녀가 출연했던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그녀의 학교, 전채 여대생 급기야 대한민국 여성들에게까지 이르렀다. 여기까지보면 흔하디 흔한 마녀사냥의 전철이다. 기존의 마녀사냥 또한 대상체가 적을 두고 있는 곳까지 불똥이 튀긴했지만, 그곳까지 다다른 불씨는 비난의 논리적 근거의 빈약과 억지스러움으로 이내 자멸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과거 보아왔던 동류의 사건과는 감상이 다르다.

기존에 동류로 볼 수 있었던 개똥녀나 회손녀사태 때는 뇌관이 지극히 개인적인 특수성에 기인한다고 보여졌다. 무슨말인가 하니, 지하철에서 개똥을 안치우고 나오는 여자나 올림픽에서 부상으로 금메달이 아닌 은메달을 땄다고 선수를 욕하는 행동은 상식적이고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하지 않을꺼라는 확신같은게 있었다. 그러니까 매우 특수한 네가지의 소유자가 벌인 행동이라고 여겼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번 루저녀의 사건에 대한 분노가 세포분열하듯 여기튀고 저리튀어 그곳에서 활활타고 있는 이유는 우리가 분노를 느낀 점이 특수한 개인의 생각이 아닐꺼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민족성까지 들먹이며 게르만의 위엄.jpg같은 짤방이 공감을 얻는건 그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사실 나도 남성으로 대한민국땅에서 짧지않은 세월을 살았다. 그러므로 어느정도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다. 그녀같은 생각이 특수한 개인의 것이아닐꺼라고. 여자들에게 결혼은 현실이고, 그 현실은 곧 남자의 조건, 즉 속된말로 스펙이라는게 정설까지는 아니어도 보편의 사고라는 건 부정할 수 없다. (그녀는 독특하게도 외모적인 스펙도 함께봤지만) 아마 그녀도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나름 당찬 신세대를 연기하는 마음으로 그런 발언을 카메라 앞에서 날린거겠지만 말이다. 물론 다 그런건 아니다. 내가 인복이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지인들중엔 그런 스펙(?)보다 사랑을 따르겠다는 로멘티스트들도 적지않다. 하지만 그녀들은 그야말로 1%다. 정말 특수한 케이스. 그건 그녀들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친구들 사이에서 자신들이 별종이라는 사실말이다. 그럼 우리는 인정하고 있는 보편적인 현실이 조금 유독 진한된장을 처발라 숙성시킨 것 같은 개념과 네가지 실종된 말투에서 나왔다는 이유로 이렇게 분노하고 있는 걸까? 아닐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비난의 불씨는 이도경씨 자신에서 끝나야 했다. 하지만 분명 불씨는 대한민국 여성들에 대한 성토로까지 번졌다. 그건 역시 대부분이 그녀와 같은 생각이 잘못되었지만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잘못됐지만 현실'이라는 지극히 헌재적인 이 상황에 우리는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이 사태의 본질은 한 여자에대한 공분이라기보다는 기존에 내재되어있던 사회적 모순에 대한 불만표출이라고 보는편이 옳다. 쉽게말해 이렇게 홍대에가서 분탕질 치고 개인정보 바리바리까발려 이도경이라는 여자하나 매장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혹시나 루저녀의 몰락으로 사회적 인식이 바뀔까라는 매우 희망다분한 발상에 입각한 시범케이스로 까고있다면 그게 얼마나 가능성 없는 짓인지 본인이 더 잘알꺼라 생각한다. 사실은 사회적 모순이라는 괴물보단 도륙하기 수월한 힘없는 개인에게하는 비겁한 분풀이에 불과할 뿐이다. 마초진영의 정신승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과거만해도 배금주의라는 말과 물질만능주의라는 말이 설득력있을 정도로 사회는 돈 외의 가치도 존재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사회는 경제라는 절대가치아래 우승열패와 약육강식이 당연시 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경제위기를 틈타 과거엔 체면차리며 숨겨왔던 더러운 속내들을 정의인양 꺼내보인다. 현실이라고 그게 다 옳은건 아니지만 이제는 그러한 가치판단을 할 여유도 없다. 경제위기니까. 좋은대학을 나와 돈많이 버는 직장에 들어가는게 인생의 목표다. 적성, 꿈, 자아실현같은 것들은 루저나 잉여들이나 하는 것이다. 과거만해도 스펙이라는 단어를 쓰면 기계에나 쓰는 단어라고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요즘엔 인간에게 스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얼마 전 강남에 살고싶다고 혈육을 불사른 한 소년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만약 그 소년에게 배금주의와 물질만능주의에 대해 물으면 어떠한 대답이 돌아올까? 잘은몰라도 루저들의 변명내지는 세상모르는 이상주의라는 답이 돌아올 것 같다. 이것이 현실이라는 대답도 함께 말이다. 만연이 되었다는 얘기는 익숙하다는 얘기다. 대한민국이라는 배의 조타수가 누군지 상기한다면 앞으로 더욱 만연하고 더욱 익숙해 질 것 같다.

그런맥락에서 효시야 어쨌든 이런 화두가 지금이라도 우리사회에 이슈화되어 던져진건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인식이라는게 단기간의 쇼크로 변화될 성질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도 몰래 피부 아래서 곪던 종기가 터져나와 공론화되고, 그 발상들이 얼마나 저열하고 추한지에 대한 자성할 기회를 준 것만으로도 분명 긍정적인 점이 있다. 결혼해서 사랑만 먹고 배터져죽자는 나이브한 주장을 하고싶지는 않다. 나도 돈 많이 벌고, 성공하고 싶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돈 이외의 가치가 몰가치해지고 '돈을 벌어다 주는게 좋은 것'이라는 등소평식 경제관이 판치는걸 경계해야한다는 말이다. 루저녀 사건은 이러한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 사회의 부조리를 인식하고 그것이 옳은것인가에 대해 고찰 할 수 있는 단초가 되어야한다. 현실이라는 장막이 옳고그름에 대한 판단을 방해하고 있음을 인식해야한다. 개인을 묻어봐야 남는게 뭐가있나? 사람을 묻으면 루저녀라는 이름만을 남길뿐이다. 그보다는 더러운 가치를 묻고 그 위에 바른 가치를 올리는게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모두에게도 바람직한 일이 아닐까라고 감히 생각해 본다.

덧. 쉴드글 아니다. 난독을 자랑말자.

덧2. 참고로 이 얘기를 들은 내 친구 L모군은 'C컵 이하는 루저'라는 반응으로 나를 놀래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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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필수 | 2009/11/11 15:58 | 사회를향한강속구 | 트랙백 | 덧글(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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